갑작스레 세상 떠난 친구의 그림…'불멸의 음악'으로 살아나다 [김수현의 마스터피스]

입력 2023-02-23 17:14   수정 2023-04-28 21:26

세계적 명작은 때로 지독한 불행 속에서 태어난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은 청각장애로 힘들어하면서도 세기의 걸작 ‘운명’ ‘전원’ ‘합창’ 교향곡을 지었고,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는 배를 곯는 가난 속에서 예술가곡 ‘마왕’을 세상에 내놨다. 러시아 작곡가 모데스트 무소륵스키(1839~1881)도 자신의 고통을 피아노곡으로 빚어 후세에 전했다. 무소륵스키를 괴롭힌 고통은 절친한 친구의 돌연사였다. 영혼의 단짝이 황망하게 떠나버린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집 밖을 나가지도 못했다. 그때 느낀 애끊는 심정을 예술로 승화한 작품이 바로 ‘전람회의 그림’이다. 피아노를 위해 태어났으나 관현악곡으로 편곡되면서 더욱 익숙해진 작품이다.

세상을 떠난 무소륵스키의 친구는 화가 빅토르 하르트만이었다. 평소 친분이 있던 음악평론가 블라디미르 스타소프의 소개로 만난 인연이다. 무소륵스키와 하르트만은 작곡가와 화가로 예술적 분야는 달랐지만 첫 만남부터 대화가 잘 통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창작에 대한 고뇌까지 모두 나눴다. 예술가로서 나아갈 방향도 함께 고민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르트만이 동맥류 파열로 하루아침에 유명을 달리했다. 1873년. 그의 나이 겨우 서른아홉이었다.

무소륵스키는 슬픔을 억누를 수 없었다. 그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에 나오는 대사처럼 통곡했다. 무소륵스키는 자신에게 하르트만을 소개해준 평론가 스타소프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얼마나 끔찍한 재난입니까. 개나 말 심지어 쥐 따위조차 생명이 있는데, 왜 하르트만 같은 인물이 죽어야 한단 말입니까.” 스타소프도 슬프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애도의 방식은 달랐다. 화가로서 하르트만의 뛰어난 예술성이 널리 알려지길 바라며 스타소프는 이듬해 그의 유작들로 추모 전시회를 열었다.

하르트만의 전시회를 관람한 무소륵스키는 곧바로 작업실로 향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바로 ‘전람회의 그림’이다. 작품은 전시된 그림 가운데 10점을 생동감 넘치는 선율과 다채로운 색채로 표현해냈다. 우울하거나 비장하고 장엄한 분위기부터 발랄하거나 나른하고 한적한 느낌까지 다양한 감정을 감상할 수 있는 이유다. 작품에는 하나의 그림에서 다른 그림으로 이동하는 순간까지 음악으로 묘사한 ‘프롬나드(promenade·산책)’라는 구간도 여럿 담겼다.

무소륵스키는 피아노 독주곡으로 창작했으나 특유의 대담한 표현과 강건한 곡 구성으로 후대의 많은 작곡가가 관현악곡으로 편곡을 시도했다. 그중 가장 성공한 것이 인상주의 음악 거장 모리스 라벨이 1922년 편곡한 버전이다. 무소륵스키의 독창적인 음악성을 오케스트라의 화려한 색채로 재탄생시킨 이 버전은 지금까지도 가장 널리 연주되는 형식이다.

작품은 트럼펫의 웅장한 도입부가 인상적인 프롬나드 연주로 시작된다. 프롬나드는 이후 선율 진행, 주선율 악기 등에 변화를 주면서 다양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간주로 등장한다. 첫 악곡 ‘난쟁이’에서는 도약 진행, 한쪽으로 쏠리는 독특한 리듬이 난쟁이의 절뚝이는 발걸음을 약동감 있게 표현한다. 색소폰의 유려한 선율로 음유시인의 모습을 담아낸 ‘옛 성’을 지나면 아이들의 모습이 담긴 ‘튈르리 궁전’이 이어진다. 현악기와 목관악기의 밝은 음색과 스타카토(각 음을 짧게 끊어서 연주)에 집중한다면 생동감 넘치는 작품의 매력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비들로(소달구지)’에선 더블베이스, 튜바 등의 무겁고 두꺼운 울림이 고된 삶의 비애를 표현한다.

다음은 ‘껍질을 덜 벗은 햇병아리들의 발레’. 짧은 장식음이 난무하는 목관악기 선율과 현악기의 피치카토(현을 손끝으로 튕겨서 연주)가 뛰놀며 짹짹거리는 병아리의 움직임을 그려낸다. 현악기와 약음기 낀 트럼펫의 대조로 부유한 유대인과 가난한 유대인의 싸움을 표현한 ‘사무엘 골덴베르크와 슈뮈일레’, 악센트 있는 속주로 생기를 더한 ‘리모주의 시장’을 지나면 어두운 음색으로 죽음을 표현한 ‘카타콤(로마 공동묘지)’이 연주된다. ‘바바야가(마귀할멈)’에서 타악기의 강한 타건, 현악기의 트레몰로(한 음을 빠르게 되풀이하는 연주)가 기괴한 분위기를 풍기면 웅장한 음색의 ‘키이우의 대문’이 끝을 장식한다. 종, 심벌즈 등 특색 있는 타악기가 만들어내는 호화스러운 색채에 귀를 기울이면 작품에 담긴 웅장함과 폭발력을 온전히 맛볼 수 있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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